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2025.12.06 (토)

  • 맑음속초2.9℃
  • 구름많음-6.4℃
  • 흐림철원-6.3℃
  • 흐림동두천-3.9℃
  • 흐림파주-5.2℃
  • 맑음대관령-5.4℃
  • 흐림춘천-5.1℃
  • 비백령도8.3℃
  • 구름조금북강릉0.9℃
  • 구름많음강릉2.8℃
  • 맑음동해0.3℃
  • 흐림서울-0.7℃
  • 구름많음인천0.5℃
  • 흐림원주-5.0℃
  • 맑음울릉도4.4℃
  • 구름많음수원-2.2℃
  • 흐림영월-8.4℃
  • 흐림충주-5.8℃
  • 흐림서산0.0℃
  • 맑음울진0.7℃
  • 구름조금청주-3.8℃
  • 맑음대전-4.6℃
  • 맑음추풍령-6.9℃
  • 맑음안동-7.6℃
  • 맑음상주-4.5℃
  • 맑음포항0.1℃
  • 맑음군산-4.0℃
  • 맑음대구-3.7℃
  • 맑음전주-4.2℃
  • 맑음울산-1.6℃
  • 맑음창원0.4℃
  • 맑음광주-2.7℃
  • 맑음부산1.0℃
  • 맑음통영-0.2℃
  • 맑음목포-1.0℃
  • 맑음여수-0.1℃
  • 구름조금흑산도3.1℃
  • 맑음완도-1.9℃
  • 맑음고창-5.7℃
  • 맑음순천-7.4℃
  • 흐림홍성(예)-0.9℃
  • 맑음-6.8℃
  • 구름많음제주5.8℃
  • 구름조금고산5.3℃
  • 구름조금성산4.5℃
  • 흐림서귀포7.8℃
  • 맑음진주-6.1℃
  • 흐림강화-0.5℃
  • 흐림양평-4.4℃
  • 흐림이천-5.0℃
  • 흐림인제-5.8℃
  • 흐림홍천-4.6℃
  • 맑음태백-4.4℃
  • 흐림정선군-10.8℃
  • 흐림제천-7.5℃
  • 맑음보은-7.4℃
  • 흐림천안-6.4℃
  • 구름많음보령-0.5℃
  • 맑음부여-6.2℃
  • 맑음금산-7.3℃
  • 맑음-4.9℃
  • 맑음부안-3.1℃
  • 맑음임실-7.5℃
  • 맑음정읍-5.1℃
  • 맑음남원-6.4℃
  • 맑음장수-8.9℃
  • 맑음고창군-4.5℃
  • 맑음영광군-4.4℃
  • 맑음김해시-1.5℃
  • 맑음순창군-6.6℃
  • 맑음북창원-1.9℃
  • 맑음양산시-1.2℃
  • 맑음보성군-4.1℃
  • 맑음강진군-5.0℃
  • 맑음장흥-6.8℃
  • 맑음해남-6.8℃
  • 맑음고흥-6.6℃
  • 맑음의령군-8.7℃
  • 맑음함양군-8.3℃
  • 맑음광양시-2.0℃
  • 맑음진도군-4.1℃
  • 맑음봉화-10.1℃
  • 맑음영주-7.7℃
  • 맑음문경-3.9℃
  • 맑음청송군-10.3℃
  • 맑음영덕-0.3℃
  • 맑음의성-8.8℃
  • 맑음구미-5.5℃
  • 맑음영천-6.0℃
  • 맑음경주시-5.7℃
  • 맑음거창-9.0℃
  • 맑음합천-6.3℃
  • 맑음밀양-6.1℃
  • 맑음산청-7.0℃
  • 맑음거제-1.8℃
  • 맑음남해-0.8℃
  • 맑음-6.2℃
기상청 제공
영광 고도도서 전국 최초 ‘봉수군마을’ 터 확인… 조선시대 봉수제 운영 실태 규명 기대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광 고도도서 전국 최초 ‘봉수군마을’ 터 확인… 조선시대 봉수제 운영 실태 규명 기대

실제 거주 흔적·우물 터 등 고고학적 증거 확보… 문헌 속 ‘봉수동’과 일치

1.사진(고도도봉수 봉수군 마을 내 우물 터).jpg

조선시대 봉수제 운영 실태를 보여주는 봉수군의 생활 유적이 영광에서 국내 최초로 확인됐다. 영광군은 7일 개최한 ‘영광 고도도 봉수 봉수군마을 시굴조사 자문회의’에서, 『호구총수』(1789년)에 기록된 봉수군 거주지로 전해지는 ‘고도도 봉수 봉수군마을(봉수동) 터’를 실제 유적으로 밝혀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시굴조사는 영광군이 지난해 실시한 학술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문헌 기록과 지역민 증언을 토대로 고도도 봉수 남쪽 약 30분 거리 산비탈 끝자락에서 진행됐다. 조사단은 세 곳의 구덩이를 나눠 조사한 결과, 조선시대 건물지로 추정되는 석렬(石列)과 8~9단의 계단식 석축, 지금도 물이 솟는 우물 터를 발견했다.

이러한 고고학적 성과는 해당 지역이 단순한 통신시설 주변이 아닌 실제 사람이 거주한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봉수로의 시작점에 위치해 있는 점, 조선시대 문헌에 ‘봉수동’으로 기록된 점 등과 함께, 이곳이 봉수군이 거주하던 봉수군마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조사단의 분석이다.

영광 고도도 봉수는 조선시대 제5로 직봉노선 중 하나로, 여수 돌산도에서 출발해 서울 남산(양천 개화산)까지 이르는 총 23개 봉수를 연결하는 국가 통신망의 핵심축이었다. 각 봉수에는 약 100명의 병력이 편성됐으며, 5인 1조로 5일간 윤번제로 봉수를 지켰다. 봉수군은 횃불로 신호를 전달하고 후망(감시) 역할도 병행했다.

이번에 확인된 봉수군마을 유적은 국내에서 봉수군의 실제 생활 기반을 보여주는 첫 사례로, 봉수제 운영체계와 봉수군의 사회·경제적 삶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평가된다.

영광군 관계자는 “이번 유적은 조선시대 통신·국방의 실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희귀한 사례”라며 “봉수군마을과 봉수로에 대한 후속 학술조사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궁극적으로는 사적 지정 구역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